일본 출판계가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한 까닭

2015. 11. 19. 14:12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책값을 단 1%도 할인할 수 없는 완전도서정가제(일본 명칭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인이 쓴 완전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요약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완전도서정가제의 두 가지 취지

1. 일본 어디에 살든 돈이 많건 적건 누구나 평등하게 책을 살 수 있게 한다.

만일 완전도서정가제가 없어서 서점이 책값을 자유롭게 정하는 구조라고 합시다. 도쿄 같은 수도권은 서점이 많아서 서로 지지 않기 위해 할인 경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서점이 많고 경쟁이 치열한 도쿄에서는 책값이 내려갑니다. 그래서 도쿄 같은 도심지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책을 싸게 살 수 있겠지요.

반면, 지방은 도쿄보다 서점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서로 할인 경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방 서점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고 팔고, 지방 사람들은 책을 할인 없이 사야 합니다. 이로 인해 지역간 격차가 생겨버리죠.


또한, 완전도서정가제가 없으면 가격경쟁으로 인해 작은 서점들이 망해버립니다. 동네 서점은 사라지고 도심의 대형서점만이 남게 되어 지방 사람들은 책을 쉽게 볼 수 없게 됩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지역 격차를 없애자는 것이 완전도서정가제의 필요성 중 하나였습니다. 

(역주-온라인서점의 할인율이 높고, 전국에 택배가 하루면 도착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이 취지가 무색한 부분이 있다)


2. 유명하고 큰 출판사와 이름 없고 가난한 출판사가 평등하게 출판할 수 있다.

완전도서정가제에서는 아주 작은 출판사라도 출판업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가장 큰 출판사와 가장 작은 출판사가 있다고 합시다. 규모가 큰 출판사는 만화, 소설, 경영서, 잡지 등 온갖 책을 대량으로 출판합니다. 반면, 일본에서 가장 작은 출판사는 장수풍뎅이에 관한 책만을 전문으로 출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값을 서점이 자유롭게 결정하는 시스템이라면(완전도서정가제를 없앤다면), 서점은 다른 서점보다 책값을 할인해서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책을 많이 팔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여기서 힘들어지는 건 장수풍뎅이 책을 전문으로 내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출판사입니다. 대형 출판사는 책값이 내려가서 이익이 줄어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비교적 영향이 적습니다. 규모의 메리트(merit of scale)가 있는 거죠. 그러나 작은 출판사는 그렇지 않아도 책 종수가 적은데, 가격이 내려가면 이익이 줄어서 출판사 운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수요가 정해진 책이고 원래 이익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익 감소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지요.


그래서 책값을 서점이 마음대로 할인하는 구조가 되면 작은 출판사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장수풍뎅이에 관한 책들도 내지 못하게 되고, 그 책을 읽고 싶었던 독자들은 난감해집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있으면 작은 출판사라도 가격을 자유롭게 정해서 출판 활동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서점 구석 책장에 있는, 그다지 수요가 없는 책의 가격이 비싼 까닭은 작은 출판사가 생존을 위해 이익을 낼 수 있는 가격을 매겼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크기와 상관없이 여러 출판사가 다양한 책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완전도서정가제의 필요성 중 하나입니다.


일본이 완전도서정가제를 앞으로도 지속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필요성 여부를 가지고 갑론을박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할인을 원천 봉쇄당한 쪽의 불만도 있기 때문에 보완책에 대한 의견도 나왔습니다. 1980년 일본처럼 할인할 수 없는 책과 할인할 수 있는 책을 출판사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한다든가 한국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가를 내릴 수 있게 한다든가요.

2001년, 일본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당분간 완전도서정가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출처 - http://kot-book.com/%E5%86%8D%E8%B2%A9%E5%88%B6%E5%BA%A6%E3%81%AE%E4%BB%95%E7%B5%84%E3%81%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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