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가 출판을 포기하면 저자 선인세는 돌려받을 수 있을까?

2013. 2. 16. 11:23

출판 계약을 하면 출판사는 저자에게 '선인세'를 원고 쓰기 전에 계약금처럼 미리 준다. 그런데 나중에 원고를 받아보니 기대와 달리 질이 떨어지면 이걸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수정 요청해서 바뀔 수 있는 수준이면 다행이지만, 아예 새로 써야 하는 수준이 되면 골치가 아프다. 새로 쓴다고 나아질 가망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어려워 보이면 출판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온다.
그럼, 미리 지급한 선인세는 어찌 되느냐? 이걸 저자에게 대놓고 돌려달라고 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그런 저자에게 원고를 맡기고 컨셉을 잘못 잡아준 편집자의 책임이 있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나 집필 중 들인 저자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돌려달라고 하기가 뭣하다. 출판계약서에도 '완전한 원고'를 언제까지 줘야 한다고 쓰여 있지 '출판하기에 질이 떨어지는 원고'를 주면 선인세를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이런 경우, 전적으로 저자 책임이라기보단 편집자가 저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거나, 원고의 방향을 갈팡질팡 못 잡아준 탓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럼 결국 출판사는 선인세를 날리게 되는데, 큰 출판사의 경우는 많이 계약하다 보니 이런 일이 꽤 있다. 나중에 총무부나 경영지원부에서 '선인세가 지급되었는데, 출판기한이 지나도 책이 안 나오는 목록'을 내밀면 담당 편집자는 진땀을 뺀다.

GRIJOA 편집자

초보 편집자가 알면 좋은 것들

2013. 1. 31. 10:51

"뭔가 배우는 실용서나 학습서에서는 편집자가 해당 분야에 관해서 대상 독자와 같은 지식수준을 유지하는 게 좋을 때가 많다. 아예 모르면 더 좋을 때도 있고.

너무 잘 알면 그 책을 볼 독자가 뭘 어려워하는지 알지 못해서 원고의 어려운 부분을 고치지 못한다. 많이 알면 알수록 소중한 초보자 시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저자에게 필요한 사람은 자신보다 자기 분야를 더 많이 아는 편집자가 아니라 첫 번째 독자로 초보자 시점에서 봐 주고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는 편집자다."



"자기 기획으로 책을 낼 배짱이 없는 편집자,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지 않는 편집자는 반쪽짜리다. 반대로 교정 교열 등의 기본 편집 일에 손 안 대고 기획만 하려는 편집자도 반쪽짜리다. 아무리 기획이 좋고 원고가 좋아도 교정 교열을 비롯한 기획 이외의 것들을 소홀히 하면 책은 제대로 꼴을 갖추지 못한다.
기획이 교정 교열 위에 있으며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도 시건방이다. 편집의 모든 과정이 기획과 연결되어 있다. 저자한테서 원고 받아온 것만으로 내가 만든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태권V 머리만 만들어놓고 내가 다 만들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초보 편집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불안해도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아주 이상한 쪽으로 갈 것 같으면 편집장이나 선배가 적당한 선에서 제지하거나 도와줄 것이다.(안 해주면 때려쳤...)

결정을 못 내리고 앞으로 전혀 안 나가는 것보단 미숙해도 결정해서 앞으로 나가는 게 백번 낫다. 설령 경험부족으로 실패해도 성공했을 때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그렇게 멋진 편집자가 되어 간다."

GRIJOA 편집자

우리나라의 흔한 초보 편집자

2013. 1. 30. 09:10

출판사에 편집자로 입사하면 먼저 다른 선배 편집자를 보조한다. 3교 중 1교를 맡거나 재판 작업 등을 하면서 분위기를 익힌다. 그러다 실력이 쌓였다고 위에서 판단하면 이미 계약이 끝난 원고를 '이 책 네가 해라' 하고 맡긴다. 하고 싶은 책을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계약해둔 책을 책임편집자로서 맡는 것이다.(보통 그리 중요한 책은 아니다)

곧잘 하면, 본인이 직접 기획해서 책을 내보라고 한다. 부담된다고 '난 기획 안 할래요' 하면 교정교열자로 머무는 것이고, 한다고 하면 기획능력이 있는 편집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막상 기획에 들어가면 막막하다.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 타사 베스트셀러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슷한 기획을 한다. 아니면 그냥 자기 취향대로 내는 사심 기획을 하기도 한다. 판매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초보 편집자의 약점은 귀가 얇다는 거다. 어떤 영업자는 순진한 편집자를 자기 손발로 만들려고 한다. 영업자가 이거 하면 잘 팔린다고 자기와 친한 저자를 소개해준다. 영업자의 바람과 저자의 말발을 가미하면,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편집자는 그런가 하고 덥석 문다.
저자한테서도 낚인다. 언변이 좋은 저자와 만나면, 저자 의도대로 편집이나 디자인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저자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자긴 초보 편집자니까 꿀린다고 생각한다. 좋은 저자인지 구분할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마치 교수와 제자 관계 같은 느낌으로 질질 끌려간다.
스스로 판단해서 어디까지 장악력을 뻗쳐야 할지,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한다고 해도 그 주장 자체에 본인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자꾸 중심이 없이 왔다갔다한다.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도 힘들다.

위에서 그 모습을 본 편집장이나 선배 편집자는 '훗~ 역시 어리군' 하며 조금씩 도와준다. 이 부분에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초보 편집자도 있는가 하면 자존심 강해서 간섭한다고 생각하는 초보 편집자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본인이 만든 책이 실패하면, 그 실패로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크게 배운다. 만일 운 좋게 성공하면 그 전에 잘못했던 것들은 다 잊고 잘한 것만 기억한다.

편집자 성향과 출판사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칠 수도 있지만 내가 겪고 옆에서 봤던 초보 편집자들은 이랬다.

GRIJOA 편집자

기획하는 편집자

2012. 10. 1. 16:17

어느 정도 한 사람 몫을 하는 단행본 편집자라면 위에서 시키는 책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받기만 하는 건 좋지 않다. 책 편집자는 자기가 기획하고 만들어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편집자지, 남이 기획한 걸 받아먹기만 하면 그건 반쪽 짜리 편집자라고 생각한다.


남이 하라고 해서 진행한 책은 아무래도 애정이 덜하다. 게다가 해당 기획자가 자꾸 간섭하게 되면, 그게 작은 거라도 점점 그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편집의 공력이 달라진다. 책이 잘 되더라도 처음 기획을 했던 사람에게 더 많은 공이 가는 구조라면 더더욱 마지못해 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 자꾸 간섭을 받으면 '그럼 니가 하든지'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남의 기획을 받아서 만들면 책이 잘 안 팔렸을 때의 책임도 덜 수 있어서 부담이 크지 않다. 그렇지만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니 얻는 것도 딱 그만큼이다. 늘 이러면 더 도전하지 않고 기획력이 없는 편집자가 되기도 한다. 그 결과, 출판사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지는 좁아진다.


아예 기획할 기회를 안 주는 출판사라면 마인드를 바꿔서 내 책이라고 암시를 거는 방법이 있다. 대신 시작하기 전에 아예 '이제부턴 제 일이니 간섭하지 말고 저를 믿고 맡기라'고 선을 긋는다. 그마저도 안 통하면 재미없는데 뭐하러 편집자 같은 걸 하고 있을까.

 

 

GRIJOA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