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문학 시장을 키우는 출판사 CUON

2013. 6. 21. 14:20

해마다 일본 책은 900여 종 이상 한국에 번역 출판되는 데 비해, 일본에서 출판되는 한국 책은 한 해 평균 80여 종(한국 문학서는 20여 종)도 안 된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판권이 10억을 넘겼다고 하는데, 한국 책이 일본에 그 정도 대우를 받고 나간 사례는 없다. 출판계에서는 일류(日流)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축구 한일전처럼 비등한다면 라이벌 의식이라도 가질 텐데, 아예 맞서는 것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일본 책에 열광하는 것처럼 일본인에게 두루 읽힐 한국 책은 없을까.


바꿀 수 없어 보이는 이 대세의 반대편에 있는 출판사가 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내고 있는 출판사 CUON이 그렇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출판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이며 험난한 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문학의 인지도가 낮고 한국어를 이해하는 일본인 편집자도 무척 적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본다면 비즈니스로 성립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CUON의 김승복 대표는 과감하게 이 험난한 길을 선택했고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전도사로서 꾸준히 한국문예서를 내고 있다. 단순히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에서 한국 책 시장을 키우고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시장이 작다고 실망하지 않고 시장을 키우는 것이다.


그 일환의 하나로 CUON은 ‘K-문학진흥위원회’을 만들어 2013년 6월 4일 도쿄에서 출판사와 번역가 등을 대상으로 한국어 콘텐츠 보급을 위한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의 책’ 50권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문예 작품만 아니라 그림책, 수필, 실용서, 만화 등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발간된 다양한 책들이 포함돼있다.



K-문학진흥위원회는 2011년, 작가이자 호세이(法政)대학교 교수인 나카자와 게이 씨를 위원장으로 번역가, 출판사 대표, 자유기고가 등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다. 이들은 양국 문화의 상호이해 심화를 위해 한국 책의 일본어 번역을 늘리는데 한몫하자는 것이다. 



설명회에는 한국 문화를 일본에 적극 알리고 있는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도 발표자로 나왔다.

구로다 후쿠미 "일본과 한국은 비슷하면서도 좀 다릅니다. 그 차이가 서로를 끌어당기리라 생각합니다"


설명회와 함께 가이드북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의 책 - 추천 50선>도 배포했다. K-문학진흥위원회에서는 이 가이드북을 일본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무상으로 보내 한국 책이 더 많이 번역 출판될 기회를 만들고 있다. 덕분에 배포 한 달도 안 되어서 가이드북에 실린 한국 책 중 4권이 이미 계약되었다고 한다.



김승복 대표에게 질문

Q 한국 책 선정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K-문학진흥위원회'에서 추천한 책 또는 한국 출판사들에 연락해서 책을 받거나 직접 사서 읽어본 뒤 선정해요. '일본에서 될 것 같은 한국 책'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 책은 계약될 것 같다'고 생각한 책이 실제로 계약이 되면 희열을 느껴요. 일본 출판 관계자들이 선호하는 한국 책을 조사했는데, 1 일본에 없는 콘텐츠, 2 학습만화 시리즈물, 3 한일 공동기획/제작/동시발매였어요."


Q 일본에 없는 콘텐츠라... 일본은 별의별 책들이 다 나와 있는데, 그런 독특한 콘텐츠가 한국에 있을까요?

"예를 들면 한국 고유의 것들. 뭐 떡볶이에 관한 책이라든가... 이런 것은 일본에 없는 콘텐츠예요."


Q 이러한 설명회와 가이드북 출간으로 출판사 CUON이 얻는 메리트는 무엇인가요? 에이전시 역할을 하시나요?

"일본 출판사가 에이전시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전문 에이전시도 아니고 일이 번거로워서 에이전시 일을 주력으로 삼고 싶진 않아요. 일본 출판사가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 계약을 진행해도 상관없어요. 이러한 활동의 목적은 에이전시 수수료가 아니라 일본에서 한국 책 시장을 키우는 것이니까요. 한국 책이 일본에 더 많이 나와야 CUON의 한국 책도 더 많은 일본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Q 가이드북에 상당한 공을 들이신 것 같습니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한국 책들을 CUON에서도 내나요?

"우리는 한국문예서 전문 출판사라 조건에 맞으면 하겠지만, 형편상 우리가 모든 책을 다 낼 수는 없어요. 꼭 우리 출판사에서 내지 않더라도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 책을 많이 내주었으면 합니다. 가이드북은 앞으로 6개월에 한 번씩 내고 한국 책 시장이 만족할 만큼 커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출간을 멈출 생각이에요."



Q CUON에서 펴낸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의 표지가 근사하네요? 디자이너는 어떤 분인가요?

"일본 서점에서도 표지에 대한 평이 좋아요. 디자이너는 유명한 일본 분인데 CUON의 뜻을 잘 이해해줘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해주셨어요.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었죠."


Q 한국문학을 읽는 일본 독자는 어떤 분들인가요? 

"지한파, 재일한국인, 한국문학 마니아가 주독자층이에요. 한국문학독서감상문 대회도 열어봤는데, 의외로 참가자의 80% 이상이 직장인이었어요. 그 중 반이 남성이구요. 주부나 학생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여기서 가능성을 봤어요."


Q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출판한다는 것...?

"한국 작품은 안 팔린다는 이유로 번역 출판이 많이 되지 않아요. 책장에 책이 없는데 어떻게 팔리겠어요. 상품 진열장에 상품이 없고 썰렁하면 손님들이 그 가게를 찾지 않듯이 서점의 진열장에 한국문학 코너를 만들고 다양한 작품들이 진열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모범을 스스로 보이겠다고 마음먹었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과감하게 개척해나가는 출판사 CUON의 김승복 대표. CUON의 노력에 힘입어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책이 일본에 나오기를 바란다.

GRIJOA 소출판시대

전자책 유통사가 출판에 뛰어드는 걸 좋게만 볼 수 없는 까닭

2012. 10. 23. 11:03

전자책 유통사에서 출판을 직접 하는 건 예상된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점이 우려된다.


1) 잘 안 된다 싶으면 접으면 그만이다. 출판이 잘 안 되어도 유통사는 원래 하던 거 하면 된다. 그거 망한다고 유통사가 망하진 않는다. 절실하지 않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 책 한 권 한 권에 온 힘을 쏟는 출판사와는 절실함이 다르다.


2) 다른 출판사의 전자책보다 유통사가 만든 전자책을 민다. 당연히 남의 책보다 자기 책이 중요하니 메인 페이지 좋은 위치에서 노출을 많이 한다. 그런 노출 강점을 이용해서 저자를 회유한다. 기획 능력이 부족한 전자책 출판사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책을 잘 팔아주는 도우미 역할에서 벗어나 출판사 몫까지 뺏어가려고 하니 충돌이 불가피하다. 마치 대형 마트와 영세 상인들 싸움과 닮아있다.


3) 유통사가 책을 보는 시각은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많은 종수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 목적이다. 지금처럼 전자책 시장이 좁은 상황이라면 더 많은 종수가 필요하다. 그걸 빨리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책 한 권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완전히 제로부터 기획해서 원고를 다듬고 저자, 디자이너와 소통해서 책을 내는 느긋한(?) 일은 하기 어렵지 않을까. 


저자한테 받은 원고를 다듬지도 않고 소통도 안 하고 빨리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저자 역시 그런 곳에 자기 원고를 맡기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유통사는 소설 분야처럼 별로 손을 안 대도 되는 원고를 찾아서 그 과정을 최대한 생략해서 빨리 내고 싶어할 텐데 소설이라도 최소한의 손길은 필요하다.


단순히 유통사가 편집자를 고용한다고 해서 유통사 마인드가 출판사 마인드로 바뀌진 않는다. 좋은 책을 만들기보다는 돈이 되는 방법, 출판사한테 콘텐츠 주십사 안 하고 어느 정도 독립할 방법을 찾은 게 직접 출판이니 고용된 편집자나 디자이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 역시 비슷한 생각으로 출판하는 곳이 일부 있다. 매출 만들기 위해 무조건 책을 많이 내는 상황은 영업 논리가 앞선 출판사에서 편집자가 흔하게 겪는 상황 아닌가. 일반 단행본 기준으로 1년에 한 사람이 20권이고 30권이고 막 내는 책들이 정상적일 리 없다. 유통사에 고용된 편집자나 디자이너라면 그런 마인드 아래서 일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 그보다 더한 상황을 겪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책, 필요한 책을 기획할 수 있을까. 많이 계약해서 빨리 받고 많이 내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기 쉽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독자가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과연 좋아할까 하는 점이다.


슛을 남발하다가 겨우 한 골 넣는 식으로 어쩌다 전자책 한 권이 대박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의 의미'가 빠진 유통사의 직접 출판 사업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것이 출판계와 독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GRIJOA 전자책

지유가오카의 원점회귀 출판사 미시마샤 대표 인터뷰

2012. 9. 27. 18:03

일본의 출판사 <미시마샤 ミシマ社>


미시마샤는 대표 1명과 직원 7명의 작은 종합 출판사입니다. 히트작을 내기도 했지만, 기존 일본 출판사의 도매상을 거치는 유통 방식을 따르지 않고 서점들과 직거래를 한다는 점, 출판사가 모여있는 진보초가 아닌 지유가오카에 사무실을 두었다는 점 등 남다른 부분이 있어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 중 하나에 어린이 그림책 <빨리 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가 있죠. 제가 바라는 출판사의 모습이라고 할까, 대표 미시마 쿠니히로의 마인드가 멋집니다.
이 분의 인터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2006년 4월, 출판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요. 다른 출판사에 취직할까, 프리랜서 편집자가 될까 하고요. 하지만 어떤 선택도 위화감이 있었어요. '다른 출판사에서 일해도 결국 똑같지 않을까' 하고 있다가 어느 날 밤 문득 생각했어요.

'아,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겠다' 하고요. 그렇게 생각했더니 시야가 확 넓어지고 앞이 밝아졌어요.

회사 그만두면 큰일 난다고 한 사람들은 누구 하나 독립하지 못했어요. 몸을 사리지 않고 개인으로 사는 분들은 모두 찬성했어요. 그때 제가 앞으로 같이 가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었지요. 낭떠러지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선택을 한 제가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의 사람들 반응에서 그 사람의 인생관과 살아온 발자취가 모두 드러납니다.

하지만 창업해보니 장난이 아니더군요. 보통 '출판사를 하는 건 제정신이 아니다'는 게 업계의 상식이었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출판은 사양 산업이죠.
하지만 제 안에는 '꼭 잘 될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재미있고 좋은 책을 계속 만들어낸다, 콘텐츠의 힘으로 승부한다'는 원칙이 있으면, 유통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출판 비즈니스는 입금이 아주 느려요. 위탁판매라서 정산되는 게 책을 납품하고 7개월 후죠. 작년 12월에 낸 책의 정산이 올 7월이에요. 그동안에 인쇄비, 저자 인세, 사무실 임대료 등의 돈은 빠져나가죠.

'역시 안 되더군요'하고 꼬리를 내리는 일은 간단하죠. '여기에서 그만두면 정말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때 '많은 사람이 여기서 그만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그만두지 않으면 반드시 잘 될 거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극복했어요."

"도쿄 중심부가 아닌 지유가오카에 출판사를 차린 것은 일본 출판계의 중심은 진보초를 비롯한 야마노테 선 안이기 때문입니다. 출판계의 중심에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그쪽의 상식에 말려들어 가게 됩니다. 지금도 도쿄는 중요한 도시이고 도쿄 없이는 출판계와 일본 경제가 성립되지 않지만, 너무 오랫 동안 한 곳에 집중된 감이 있습니다. 도쿄는 피폐해졌는데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 많으면 도쿄가 왠지 불쌍합니다. 조금 쉬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 산업은 지금 전환기가 왔고, 이런 때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은 '원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토대를 만들려면 새 장소에 거처를 마련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출판이라는 일은 단순한 거예요. 재미있고 좋은 책을 만들어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자는 게 원점이죠. 모든 것을 거기서부터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요즘 출판사의 대부분은 우선 달성해야만 하는 연간목표를 숫자로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려면 편집자 한 사람이 책을 몇 권 만들어야 한다는 거꾸로 된 발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잘 팔리는 책이 한 권 나오면 그 책과 비슷한 책이 몇 권이나 만들어져요. 그렇게 되면 편집자는 점점 피폐해지고 로봇처럼 소비되어버려요. 순수하게 자기 안에서 '이거 재미있다'는 감각으로 책을 만들면 비록 실패해도 공부가 되고 그 도전 자체가 큰 역량이 된다고 봅니다.

모순된 얘기지만 예전부터 책의 판매 부수에도 신경 쓰고 있어요. 간혹 '좋은 책이면 안 팔려도 된다'는 편집자가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정말 재밌고 좋은 책이라면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과 그 재미를 공유하고 싶어서 팔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저는 회사를 만들 때 '최소 100년은 버티는 출판사를 만들자'고 마음먹었어요. 몇 년 안에 무너지는 회사라면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소비재가 아니라고 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며 지혜와 감동과 즐거움을 느꼈듯이 미시마샤의 책도 10년, 20년 후에도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고 싶습니다. 장정과 디자인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단기간에 소비되는 책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혼자 출판을 시작했을 때부터 '크게 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 말해왔습니다. 출판업에서는 규모를 확대할 메리트가 적습니다. 한 권의 밀도를 높이는 것과 직원 수가 많은 것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출판의 원점은 회사의 규모를 크게 키우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일에 전력투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 뿐이고, 개개인의 감각과 회사의 움직임이 항상 연동되면 됩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를 넘어서면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회사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납니다. 모체를 유지하기 위해 안 만들어도 되는 책을 만드는 것이 두려워지니까 마케팅에 의존하게 되지요. 마케팅은 확률론이고, 어떻게 하면 타율을 높일까 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보다 기존에 재미있었던 책과 베스트셀러의 축소생산이 되어 버립니다.
개개인의 감각이나 생각을 나타내지 않은 채, 타율 우선이 되면 회사는 단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타율이 떨어집니다. 개개인의 감각은 쓰지 않으면 둔화하고 실패해도 자기 생각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향상되지 않습니다."

"(출판으로) '먹고 살 수 있나요?' 하는 말을 자주 듣는데요. 모든 것을 내다보는 사람은 없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고 거기에 정면으로 부딪쳐서 즐길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전혀 여유가 없고, 한 권 한 권이 승부입니다. 고교야구의 토너먼트 같아요. 출판불황과 활자이탈은 출판인이 본래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한 결과라고 봅니다. 적당한 책을 사게 하면 독자는 떠나갑니다. 거기에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시대와 구조를 탓하면 안 됩니다.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책을 사랑과 경의로 온 힘을 다해 만들면 반드시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출판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가지의 교육론>이 5만 부를 넘은 정도고 대단한 베스트셀러는 아직 없습니다. 베스트셀러는 출판의 큰 즐거움이니 장외 홈런은 물론 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삼진 아니면 홈런을 노리고 스윙하진 않아요. 잘 팔린다고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을 만나서 좋았다'고 생각되는 게 가치 있는 책이니까요. 홈런을 기준으로 하면 이상해져요. 맞추려고 하면 확률론과 마케팅이 되어 버리니까요. 그런 쪼잔한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절판은 출판사만의 사정이고 독자를 생각한 결정은 아닙니다. 재고를 갖는다는 것은 물론 회사에 리스크입니다. 경제 합리성으로 얘기하면 신간을 자꾸자꾸 내서 계속 절판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는 적어도 '읽고 싶다'는 독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겁니다. 배짱으로 절판은 안 합니다."


"Q 평론, 시집, 그림책, 만화에세이, 요리책, 건강서. 출판하시는 책 종류가 다양하네요?

다면적이고 풍부한 출판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싶어서 '작은 종합 출판사'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하나하나 해온 결과, 다양한 책이 나왔습니다. 잘 팔리는 책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출판은 다수파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출판사는 옛날부터 그 시대에 존재하는 다른 견해를 반골 정신이 있는 편집자가 책으로 만들고, 그것이 후세에 전해지는 겁니다. 기획한 시점에 모두가 이미 좋다고 한 것은 책이 되었을 때 아주 평범한 것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내고 난 후에 '야, 재미있다!' 하고 생각되어야 하죠."

"비즈니스맨이라면 돈을 버는 것이 최우선이 되는데요. 편집자는 시대와 마주해서 좋은 것을 최고의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 일입니다. 거기에 비즈니스 센스가 있으면 5,000부 팔고 끝날 책을 1~2만 부 팔 수 있습니다."

"편집자는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이거라면 팔릴 거다'라든가, '지금 이게 유행하니까'라는 이유로 기획을 세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것'. 남들이 '이게 뭐야!?' 하고 지적해도, 만들고 나면 재미있어질 거라는 감각을 믿으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게 뭐냐는 것은 되도록 언어화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게 미시마샤가 생각하는 재미입니다' 하고 제시하면 그것이 모든 것이 되어 버립니다. 모르는 사이에 그 정의에 구속받아서 재탕 삼탕 하는 책을 만들게 됩니다. '재미'는 자유롭고 다양해야 합니다. 점점 변해가는 생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편집 일은 거울 같은 거라 생각해요. 저자와 마주했을 때 저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싶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닌데, 저는 저자에게 거의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같이 재밌는 일을 합시다'고만 말하고 그냥 앉아 있어요. 그러다 저자가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거기에서 뭔가 나와요. 즉, 답은 글을 쓰는 사람 쪽에 있어요. 흔히 '저 책은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는 편집자가 있는데 그건 오만이에요. 그러나 저자도 생각하지 못한, 자기 안에 있는 엄청 재미있는 주제를 함께 갈고닦는 일은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출판불황' 따윈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했던 방식에 매달린다면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예전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다양한 형태의 책을 많이 내게 되면 그것들이 쌓여서 재미있는 일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요. 미시마샤에서는 회사에서도 직원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익 추구를 첫 번째 목적으로 하지 않고 '즐거움'을 내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돈은 반드시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출판사가 돈을 잘 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무일푼이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그때보다는 내려가지 않는다'고 마음 먹습니다. 늘 '어떻게든 된다'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x5EClE_W7CI&feature=youtube_gdata_player
http://www.freestyle-life.net/free-100-page-27.htm
http://doraku.asahi.com/hito/runner2/120918.html
http://allabout.co.jp/human/special/s1/120626/
http://synodos.livedoor.biz/archives/1872717.html
http://www.mishimaga.com/special/034.html

GRIJOA 소출판시대

다람쥐 쳇바퀴 출판

2012. 9. 24. 17:30

일본 출판사 미시마샤의 영업자 와타나베 유이치
"일본 출판업계의 매출은 1996년을 절정으로 조금씩 떨어져 왔습니다. 1년에 출간되는 신간 종수는 1992년에 38,000종이었지만 현재는 약 80,000종으로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즉, 단순계산해도 신간의 권당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또 하나 번거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반품이죠. 원칙상 신간은 초도 배본에 대해 6개월간 위탁 상품으로 배본됩니다. 이게 뭐냐 하면 6개월의 위탁 기간 동안에는 언제든지 반품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 하면 서점은 리스크를 줄이고, 동시에 출판사는 상품을 서점에 진열할 기회를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게 됩니다. 위탁판매가 아니라 '매절'이라면 팔리는 책만 선별적으로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게 되면 출판사 처지에서는 '팔 기회'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위탁 판매 제도는 양자에게 아주 좋은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점도 있습니다. 출판 종수가 대폭 증가한 현재로서는 반품률 상승은 출판사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반품률이 급기야 40%까지 높아졌습니다. 출판사에서 내는 책은 총판을 통해 전국의 서점에 배본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반품된 책의 약 절반이 결국 출판사 창고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의 대부분은 두 번 다시 사람 눈에 띄는 일 없이 폐기 처분됩니다. 악순환이죠. 자원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야말로 구조적 문제의 정체입니다.

구조적 문제...

이는 출판사가 '눈 앞의 이익'만을 우선해온 결과입니다. 즉, 업계 전체의 판매는 조금씩 떨어져 왔고 이를 채우기 위해 출판사는 신간 종수를 늘렸습니다. 출간 종수는 배 이상이 되었는데 전체 매출은 거의 그대로였으니 단순히 계산해도 권당 매출은 절반이 됩니다. 

서점의 진열 공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가 배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이 점에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을지도) 당연하게도 신간 종수의 증가에 비례해서 반품 부수도 대폭 증가하고, 그 반품으로 인한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 출판사는 신간을 계속 출간합니다. 그리고 이게 반복되지요. 다람쥐 쳇바퀴처럼."

GRIJOA 소출판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