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흔한 초보 편집자
출판사에 편집자로 입사하면 먼저 다른 선배 편집자를 보조한다. 3교 중 1교를 맡거나 재판 작업 등을 하면서 분위기를 익힌다. 그러다 실력이 쌓였다고 위에서 판단하면 이미 계약이 끝난 원고를 '이 책 네가 해라' 하고 맡긴다. 하고 싶은 책을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계약해둔 책을 책임편집자로서 맡는 것이다.(보통 그리 중요한 책은 아니다)
곧잘 하면, 본인이 직접 기획해서 책을 내보라고 한다. 부담된다고 '난 기획 안 할래요' 하면 교정교열자로 머무는 것이고, 한다고 하면 기획능력이 있는 편집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막상 기획에 들어가면 막막하다.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 타사 베스트셀러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슷한 기획을 한다. 아니면 그냥 자기 취향대로 내는 사심 기획을 하기도 한다. 판매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초보 편집자의 약점은 귀가 얇다는 거다. 어떤 영업자는 순진한 편집자를 자기 손발로 만들려고 한다. 영업자가 이거 하면 잘 팔린다고 자기와 친한 저자를 소개해준다. 영업자의 바람과 저자의 말발을 가미하면,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편집자는 그런가 하고 덥석 문다.
저자한테서도 낚인다. 언변이 좋은 저자와 만나면, 저자 의도대로 편집이나 디자인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저자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자긴 초보 편집자니까 꿀린다고 생각한다. 좋은 저자인지 구분할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마치 교수와 제자 관계 같은 느낌으로 질질 끌려간다.
스스로 판단해서 어디까지 장악력을 뻗쳐야 할지,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한다고 해도 그 주장 자체에 본인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자꾸 중심이 없이 왔다갔다한다.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도 힘들다.
위에서 그 모습을 본 편집장이나 선배 편집자는 '훗~ 역시 어리군' 하며 조금씩 도와준다. 이 부분에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초보 편집자도 있는가 하면 자존심 강해서 간섭한다고 생각하는 초보 편집자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본인이 만든 책이 실패하면, 그 실패로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크게 배운다. 만일 운 좋게 성공하면 그 전에 잘못했던 것들은 다 잊고 잘한 것만 기억한다.
편집자 성향과 출판사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칠 수도 있지만 내가 겪고 옆에서 봤던 초보 편집자들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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