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 - 일본의 개성파 서점들

2013. 6. 7. 11:23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요즘 어떻게 책을 손에 넣을까? 오프라인 서점에서 산다, 온라인 서점에서 산다, 도서관에서 빌린다. 이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동네에 서점 하나쯤은 있어서 책을 고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IMF가 터진 백수 시절 때도 서점은 내가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고마운 장소였다. 하지만 요즘은 동네에 서점이 없다.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대형 서점 하나 있을까. 그래서 책을 직접 보고 사고 싶어도, 싸고 집까지 보내주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게 된다.


1994년에 5,683개였던 우리나라 서점은 2013년 현재 1,700개 정도만 남았고 그마저도 없어지는 추세다. 이런 현상은 출판 강국 일본도 비슷해서 1994년에 26,224개였던 서점이 14,000개 정도가 남았고, 현재도 하루에 하나꼴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한국은 약 28,000명당 서점 하나, 일본은 약 8,640명당 서점 하나꼴로 인구대비로는 역시 일본이 훨씬 많다)


특히 주로 사라지는 것은 동네 서점이며, 온라인 서점과 비슷한 종수와 베스트셀러 확보로 경쟁할 수 있는 대형 서점만이 책이 아닌 상품을 같이 판매하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수도권의 경우, 아직 '내가 사는 동네에 서점이 아예 없다'는 수준까진 아니어서 우리나라에 온 일본인은 왜 한국에는 서점이 적은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두 나라 모두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고는 하나 온라인 서점과 할인 경쟁에서 패한 우리나라의 오프라인 서점들이 사라지는 상황은 원래 서점 수가 많았던 일본보다 타격이 크다.


이런 상황을 알면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서점을 창업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신규창업은 없고 사라지기만 하니 가까운 앞날에는 온라인 서점만 남을지 모른다. 이런 날이 오면 책을 실제로 만져보지 못한 채, 인터넷에 자주 보이는 정보만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오프라인 서점의 암울한 앞날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에는 이대로 사라지지 않겠다며 남다른 기획으로 독자를 끌어모으는 서점들이 있다. 과연 어떻게 하고 있는지 옆 나라 서점들을 살펴보자.


오라이도 서점 

往来堂書店


1996년에 '카리스마 서점인'으로 일본 서점업계에 널리 알려진 안도 데쓰야(安藤哲也)가 도쿄에 세운 서점이다. 겨우 20평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서점이 유명해진 것은 '맥락이 있는 책장(맥락장)'을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뭐냐면 보통의 서점들이 진열하는 방식, 즉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장르별로 쭉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과 관련 있는 책을 주변에 두는 것이다. 가령, 만화 『원피스』가 화제가 되면 원피스를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고 그 주변에 『해적의 역사』를 놓는다거나 자전거 부품 책 옆에 자전거를 소재로 한 소설을 놓는 등, 장르와 상관없이 내용과 관련 있는 책을 차례로 배치하는 것이다. 독자는 이 '맥락'을 따라가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책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배치한 책장을 '맥락장'이라 부르는데, 이 책장에는 서점직원이 직접 책장 제목을 짓고 그에 맞는 책을 배치해 독자의 흥미를 끈다. 예를 들어 '꿈이 있는 책'이라는 제목의 책장에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 나쓰메 소세키의 『몽십야(夢十夜)』 등 장르에 상관없이 제목(꿈)과 관련 있는 책들을 배치한다. 오히려 이런 개성 있는 진열 방식이 호응을 얻어 마쓰마루 홈포(松丸本舗)을 비롯한 서점들도 맥락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방식을 따르는 서점들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 그 까닭은 서점직원에게 유행을 민감하게 파악하는 능력과 책에 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속하려면 수없이 맥락장 아이템을 생각해내야 한다.


오라이도 점장은 "책을 잘 선정해서 연관 있는 책끼리 배치하면 고객이 애당초 읽을 생각이 없었던 책에도 손이 갈 수 있다. 읽는 사람과 시기에 따라 책의 가치는 바뀐다. 이런 진열 방식은 책을 찾기엔 불편할지 모르지만, 인연이 없던 책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다."고 말한다.



B&B


유명 북코디네이터 우치누마 신타로가 만든 서점으로 B&B는 Book&Beer의 약자다. 이름 그대로 맥주를 들고 마시면서 책을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카페 같은 분위기가 특징인데 재미있는 것은 서점 인테리어 소품인 책장, 테이블, 의자, 조명, 스피커 등 전시된 모든 것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땡스북스가 똑같이 하고 있음) 주인장이 개업할 때 가구 살 돈이 부족해서 전시 판매하는 방향으로 했다고.


B&B에서는 저녁 8시부터 2시간가량 토크 이벤트를 날마다 한다. 작가, 평론가, 연구가, 편집자, 블로거 등의 강연이나 대담에 30~50명 정도의 독자가 참여한다. 이 이벤트는 무료가 아니라 참가비로 1,500엔을 받고 있는데, 보통 서점에서 책 판매촉진을 위해 하는 작가 사인회나 대담과 달리, B&B에서는 처음부터 이벤트 자체를 수입원으로 계획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책 이외의 사업을 넓히면 정작 책이 안 팔리는 것 아닌가 할 수 있지만, 이런 책 이외의 사업이 모두 책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날마다 이벤트를 함으로써 서점이 미디어가 되는 가능성을 찾고 있다고 한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代官山 蔦屋書店


이 서점은 만화책, 참고서 등 학생을 위한 책은 없고 어느 코너나 성인 독자를 의식한 책이 중심이다. 그런 개성이 결과적으로 폭넓은 연령층에 지지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각 분야의 책에 정통한 코너 담당자가 30여 명이 있고, 이들이 담당 코너의 책 진열을 기획하고 손님에게 맞는 책을 추천한다.

이 코너 담당자를 ‘콩셰르주(concierge)’라고 하는데, 여행 분야라면 세계 100개국 이상을 다녀온 필자, 요리 분야라면 전문지 전 편집자 등 각 분야의 프로가 있다.


콩셰르주의 말 "책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기도 합니다.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책도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서점에 오는 손님의 70%는 살 책을 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 뭐가 읽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 어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오는 사람입니다. 베테랑 서점직원은 책 제목을 말하지 않아도 ‘파란 표지에 이런 글자가 있어요, 등장인물에 이런 사람이 나와요’ 하는 말만 듣고 책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독서의 권유

読書のすすめ


점장 ‘책의 소믈리에’가 손님의 얘기를 먼저 듣고 딱 맞는 책을 골라 준다. 대형 서점에 견주어 히트작을 배본 받기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고자 점장이 읽고 재미있다고 느낀 책을 소개하는 ‘소믈리에 스타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점장이 책을 찾는 손님에게 어떤 책을 찾는지 물어보고 그 손님이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소개하게 되어 있다. 일본 가게에서는 구경하는 손님에게 말 거는 일이 좀처럼 없는데, 이걸 정착시킨 것이 특이하다. 점장인 시미즈 카쓰요시는 일본 언론에 자주 소개된 유명인이며, 이분이 서점에서 추천해준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다.



키노쿠니야 서점의 <혼노 마쿠라 ほんのまくら> 북페어
(2012년 7월 26일~9월 16일 / 2013년 1월 21일~2월 20일)


"반년 전부터 현관에서 자고 있다.", "남의 어머니를 훔쳐라.", "지구에 착륙한 최초의 외계인은 72초 동안만 존재했다." 만일 위와 같은 책의 첫 번째 문장만 보여주고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실제로 이런 이벤트를 키노쿠니야 서점이 했다. 


책에 커버를 씌어서 제목, 저자명, 내용을 안 보이게 한 다음, 커버에 그 책의 첫 번째 문장만 써서 독자는 그것만 보고 책을 사게 했다. 일본 문학이 중심인 문고판 100종이며, 인기작부터 마이너 작품까지 섞여 있지만 모두 서점직원들이 읽고 추천하는 작품이다. 담당자가 2년 전부터 생각했던 기획이며 네티즌들 화제 속에 책들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이벤트 당시 일본 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페이스북에서 8,600개의 좋아요를 받고 트위터에서 9,700명이 리트윗하는 등 화제를 불러 모았다.



쉐 무아

Chez moi


패션, 미용, 요리 등 여성을 위한 책을 구두, 가방, 액세서리와 함께 진열하고 있다. 진보쵸의 도쿄도 서점을 리뉴얼한 매장이며, 여성이 좋아하는,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를 꾸미기 위해 여성 디자이너가 인테리어를 맡았다. 서점의 1/3이 잡화, 1/3은 다소 특이한 요리책을 진열한다. 리뉴얼 오픈 후 여성 손님이 10% 이상 늘었다고 한다.



COW BOOKS



잡지 『생활의 수첩(暮らしの手帖)』의 유명 편집자 마쓰우라 야타로가 직접 고른 책을 진열한다는 작은 서점. 책을 고르는 기준은 신구간 구별 없이 ‘귀중한 책보다 직접 읽어보고 재미있거나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주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발행된 수필, 소설, 현대시, 미술, 요리, 기행, 아동서, 잡지가 많고, ‘여행하는 서점’ 콘셉트으로 전 세계에서 모은 책을 트럭에 싣고 돌아다니며 팔기도 한다.



*그 밖의 서점들


나카지마 서점

中島書店



치바 현에 있는 이 서점은 특이하게도 그날 수확한 채소를 서점에서 판다. 채소 판매대 주변에는 음식과 요리에 관한 책을 진열하고 아동서도 함께 판다.



COOKCOOP



음식에 관한 책을 신구간 구분 없이 진열한 서점. 책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모은 스페셜 커피와 잼 등 식품도 판다. 아울러 여러 음식 관련 이벤트도 하고 있다.



농업서 센터

農業書センター


일본에서 유일한 농업 관련서 전문 서점. 서점 옆에는 맛있는 쌀로 만든 오니기리 가게도 있다.



BOOK246


여행을 주제로 한 책과 여행용품을 파는 전문 서점. 여행 가이드북, 지도, 소설, 그림책 등을 판다.



여행 서점의 창

旅の本屋のまど


여행서 전문 서점. 신구간 구분 없이 나라와 지역별로 책을 진열하고 있다.



DARWIN ROOM



교양서와 함께 동물 박제와 곤충 표본을 함께 전시해서 팔고 있다.



SHIBUYA PUBLISHING BOOK SELLERS


1940년대~2000년대까지 책을 연대별로 진열한 서점. 책장을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화, 사건, 사상 등을 알 수 있다. 수준급의 인테리어로 평가가 높다.



타코 체

TACO ché


자비출판물, 한정부수 출판물, 절판본 등 일반적으로 유통되지 않는 책이나 잡지만 골라 1만 권 보유한 서점이다. 대체로 기괴한 책이 많다. 책뿐 아니라 음반, 비디오, 각종 잡화도 다루고 있다. 그림작가나 아티스트의 작품도 전시한다.



J STYLE BOOKS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책을 모아놓은 서점'이 테마이다. 건축, 인테리어, 패션, 예술, 잡화, 요리, 그림책 등의 신간, 잡지를 판다.



이시다 쇼보

石田書房


학생 시절부터 영화 제작 프로덕션에서 일하던 분이 차린 서점이다. 영화와 연극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다룬다.



ONLY FREE PAPER


여러 분야의 무료 잡지나 출판물을 모아서 진열한 곳이다. 보고 가지고 갈 수도 있다. 서점이라기보다 전시장의 느낌이 강하다. 개인 아티스트들과 기업들의 홍보 미디어로 활용되고 있다.



*위 내용은 북스피어의 르 지라시 4호에도 실렸습니다.



GRIJOA 소출판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