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문학 시장을 키우는 출판사 CUON

2013. 6. 21. 14:20

해마다 일본 책은 900여 종 이상 한국에 번역 출판되는 데 비해, 일본에서 출판되는 한국 책은 한 해 평균 80여 종(한국 문학서는 20여 종)도 안 된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판권이 10억을 넘겼다고 하는데, 한국 책이 일본에 그 정도 대우를 받고 나간 사례는 없다. 출판계에서는 일류(日流)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축구 한일전처럼 비등한다면 라이벌 의식이라도 가질 텐데, 아예 맞서는 것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일본 책에 열광하는 것처럼 일본인에게 두루 읽힐 한국 책은 없을까.


바꿀 수 없어 보이는 이 대세의 반대편에 있는 출판사가 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내고 있는 출판사 CUON이 그렇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출판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이며 험난한 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문학의 인지도가 낮고 한국어를 이해하는 일본인 편집자도 무척 적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본다면 비즈니스로 성립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CUON의 김승복 대표는 과감하게 이 험난한 길을 선택했고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전도사로서 꾸준히 한국문예서를 내고 있다. 단순히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에서 한국 책 시장을 키우고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시장이 작다고 실망하지 않고 시장을 키우는 것이다.


그 일환의 하나로 CUON은 ‘K-문학진흥위원회’을 만들어 2013년 6월 4일 도쿄에서 출판사와 번역가 등을 대상으로 한국어 콘텐츠 보급을 위한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의 책’ 50권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문예 작품만 아니라 그림책, 수필, 실용서, 만화 등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발간된 다양한 책들이 포함돼있다.



K-문학진흥위원회는 2011년, 작가이자 호세이(法政)대학교 교수인 나카자와 게이 씨를 위원장으로 번역가, 출판사 대표, 자유기고가 등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다. 이들은 양국 문화의 상호이해 심화를 위해 한국 책의 일본어 번역을 늘리는데 한몫하자는 것이다. 



설명회에는 한국 문화를 일본에 적극 알리고 있는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도 발표자로 나왔다.

구로다 후쿠미 "일본과 한국은 비슷하면서도 좀 다릅니다. 그 차이가 서로를 끌어당기리라 생각합니다"


설명회와 함께 가이드북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의 책 - 추천 50선>도 배포했다. K-문학진흥위원회에서는 이 가이드북을 일본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무상으로 보내 한국 책이 더 많이 번역 출판될 기회를 만들고 있다. 덕분에 배포 한 달도 안 되어서 가이드북에 실린 한국 책 중 4권이 이미 계약되었다고 한다.



김승복 대표에게 질문

Q 한국 책 선정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K-문학진흥위원회'에서 추천한 책 또는 한국 출판사들에 연락해서 책을 받거나 직접 사서 읽어본 뒤 선정해요. '일본에서 될 것 같은 한국 책'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 책은 계약될 것 같다'고 생각한 책이 실제로 계약이 되면 희열을 느껴요. 일본 출판 관계자들이 선호하는 한국 책을 조사했는데, 1 일본에 없는 콘텐츠, 2 학습만화 시리즈물, 3 한일 공동기획/제작/동시발매였어요."


Q 일본에 없는 콘텐츠라... 일본은 별의별 책들이 다 나와 있는데, 그런 독특한 콘텐츠가 한국에 있을까요?

"예를 들면 한국 고유의 것들. 뭐 떡볶이에 관한 책이라든가... 이런 것은 일본에 없는 콘텐츠예요."


Q 이러한 설명회와 가이드북 출간으로 출판사 CUON이 얻는 메리트는 무엇인가요? 에이전시 역할을 하시나요?

"일본 출판사가 에이전시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전문 에이전시도 아니고 일이 번거로워서 에이전시 일을 주력으로 삼고 싶진 않아요. 일본 출판사가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 계약을 진행해도 상관없어요. 이러한 활동의 목적은 에이전시 수수료가 아니라 일본에서 한국 책 시장을 키우는 것이니까요. 한국 책이 일본에 더 많이 나와야 CUON의 한국 책도 더 많은 일본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Q 가이드북에 상당한 공을 들이신 것 같습니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한국 책들을 CUON에서도 내나요?

"우리는 한국문예서 전문 출판사라 조건에 맞으면 하겠지만, 형편상 우리가 모든 책을 다 낼 수는 없어요. 꼭 우리 출판사에서 내지 않더라도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 책을 많이 내주었으면 합니다. 가이드북은 앞으로 6개월에 한 번씩 내고 한국 책 시장이 만족할 만큼 커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출간을 멈출 생각이에요."



Q CUON에서 펴낸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의 표지가 근사하네요? 디자이너는 어떤 분인가요?

"일본 서점에서도 표지에 대한 평이 좋아요. 디자이너는 유명한 일본 분인데 CUON의 뜻을 잘 이해해줘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해주셨어요.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었죠."


Q 한국문학을 읽는 일본 독자는 어떤 분들인가요? 

"지한파, 재일한국인, 한국문학 마니아가 주독자층이에요. 한국문학독서감상문 대회도 열어봤는데, 의외로 참가자의 80% 이상이 직장인이었어요. 그 중 반이 남성이구요. 주부나 학생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여기서 가능성을 봤어요."


Q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출판한다는 것...?

"한국 작품은 안 팔린다는 이유로 번역 출판이 많이 되지 않아요. 책장에 책이 없는데 어떻게 팔리겠어요. 상품 진열장에 상품이 없고 썰렁하면 손님들이 그 가게를 찾지 않듯이 서점의 진열장에 한국문학 코너를 만들고 다양한 작품들이 진열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모범을 스스로 보이겠다고 마음먹었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과감하게 개척해나가는 출판사 CUON의 김승복 대표. CUON의 노력에 힘입어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책이 일본에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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