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흔한 초보 편집자

2013. 1. 30. 09:10

출판사에 편집자로 입사하면 먼저 다른 선배 편집자를 보조한다. 3교 중 1교를 맡거나 재판 작업 등을 하면서 분위기를 익힌다. 그러다 실력이 쌓였다고 위에서 판단하면 이미 계약이 끝난 원고를 '이 책 네가 해라' 하고 맡긴다. 하고 싶은 책을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계약해둔 책을 책임편집자로서 맡는 것이다.(보통 그리 중요한 책은 아니다)

곧잘 하면, 본인이 직접 기획해서 책을 내보라고 한다. 부담된다고 '난 기획 안 할래요' 하면 교정교열자로 머무는 것이고, 한다고 하면 기획능력이 있는 편집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막상 기획에 들어가면 막막하다.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 타사 베스트셀러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슷한 기획을 한다. 아니면 그냥 자기 취향대로 내는 사심 기획을 하기도 한다. 판매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초보 편집자의 약점은 귀가 얇다는 거다. 어떤 영업자는 순진한 편집자를 자기 손발로 만들려고 한다. 영업자가 이거 하면 잘 팔린다고 자기와 친한 저자를 소개해준다. 영업자의 바람과 저자의 말발을 가미하면,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편집자는 그런가 하고 덥석 문다.
저자한테서도 낚인다. 언변이 좋은 저자와 만나면, 저자 의도대로 편집이나 디자인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저자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자긴 초보 편집자니까 꿀린다고 생각한다. 좋은 저자인지 구분할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마치 교수와 제자 관계 같은 느낌으로 질질 끌려간다.
스스로 판단해서 어디까지 장악력을 뻗쳐야 할지, 자기 주장을 관철하고 한다고 해도 그 주장 자체에 본인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주위에서 뭐라고 하면 자꾸 중심이 없이 왔다갔다한다.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도 힘들다.

위에서 그 모습을 본 편집장이나 선배 편집자는 '훗~ 역시 어리군' 하며 조금씩 도와준다. 이 부분에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초보 편집자도 있는가 하면 자존심 강해서 간섭한다고 생각하는 초보 편집자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본인이 만든 책이 실패하면, 그 실패로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크게 배운다. 만일 운 좋게 성공하면 그 전에 잘못했던 것들은 다 잊고 잘한 것만 기억한다.

편집자 성향과 출판사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칠 수도 있지만 내가 겪고 옆에서 봤던 초보 편집자들은 이랬다.

GRIJOA 편집자

<서점 숲의 아카리>를 통해 본 우리나라 서점

2013. 1. 24. 21:43



일본 서점인의 일상을 그린 <서점 숲의 아카리>에는 재밌게도 일본의 서점이 서울 지점을 내서 운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 안의 일본 서점인이 서울의 대형서점을 보고 느낀 점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장시간 책을 보더군요! 그게 일반적인 것 같아요. 점원도 주의를 주지 않죠. 그리고 선반이 전체적으로 높아요. 일본은 선반을 낮게 만들고 책을 높이 쌓아올리는데, 그렇게 하지 않더군요."


*한국 서점의 도서 할인을 본 일본인 점장

"한국에서는 할인 경쟁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원래 서점 숫자가 일본에 비해 적어서 인터넷뿐만 아니라 점포로 고객을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서점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점포에서는 고객이 책을 찾을 때 친절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일본 서점에서는 할인제도가 없어서 아직까지는 상당한 거부감이 드네요. 책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 같아서요."


"일본도 언젠가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서점은 어떻게 되는 거야?" 

→ 그래서 작품 안의 일본 서점 고위층은 도서정가제가 무의미한 한국 서점들을 보고 미리 대비하자고 한다.


*작품을 통해 본 우리나라와 일본 서점의 차이

일본 서점의 도서 POP는 서점 직원이 손글씨로 직접 쓴다. 서점 직원의 개인 평이 들어가 있어 개성이 있고 손글씨라 인간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서점 직원이 아니라 출판사가 POP를 만들고, 손글씨로 쓰면 없어 보여서 출판사가 컴퓨터로 디자인하고 코팅해서 서점 직원에게 건넨다. 만화책은 비닐포장해서 파는데, 이것도 일본은 출판사가 아닌 서점에서 작업한다. 파는 것은 우리 서점 책임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일본 서점은 반품률이 높으면 다음번 배본에서 원하는 책을 원하는 수량만큼 받을 수 없다. 이는 출판사와 직거래가 많지 않고 도매상의 영향력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또, 온라인서점과 같은 금액으로 팔기 때문에 일본 오프라인서점이 책을 팔고자 하는 의욕이나 마케팅은 우리나라보다 강해 보인다.

GRIJOA

어학서 할인 판매의 말로

2013. 1. 19. 13:37

어학서는 ISBN를 실용코드로 잡아서 신간 할인 제한에서 빠져나간다. 전에 있던 출판사에선 그리 했다. 영업자들이 애타게 원한다. 그러니 어학서는 신간 여부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할인이 가능한 자유경쟁구조다. 처음부터 온라인에서 천원 이천원 할인쿠폰은 기본이다. 

작은 출판사가 어학서를 갖고 들어와서 할인해서 팔지만 그건 큰 출판사들도 다 한다. 할인은 마케팅이 아니라 그냥 기본인 거다. 할인해도 눈에 띄지 않으니 할인어학서가 특별히 더 잘 팔리진 않는다. 통 크게 반값으로 팔거나 뭘 더 끼워줘야 움직인다. 그 분야 1위의 어학서는 경쟁서가 나오면 할인을 더 많이 해서 방어한다. 이익이 줄어드니 개정판 낼 때 예상할인금액만큼 정가를 올린다. 이게 책값이 올라가는 큰 원인이다. 

그나마 1위 어학서는 할인을 좀 덜해도 순위노출로 버티지만 작은 출판사 어학서들은 어렵다. 다음달 운영비가 아쉬우니 반값이라도 팔아서 현금 만든다. 저자 인세도 잘 얘기해서 반으로 깎는다. 돈이 없으니 다음 책 만들 돈이 부족하다. 저자도 인세가 적으니 원고 안 주려고 한다. 그러다 사라진다.

GRIJOA 소출판시대